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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카치치 벨라 목판 인쇄의 마지막 장인

흰색 면 원단에 다양한 전통적인 벨라 문양을 인쇄하는 모습 © 루투자 닐레쉬 사하스라붓헤
흰색 면 원단에 다양한 전통적인 벨라 문양을 인쇄하는 모습 © 루투자 닐레쉬 사하스라붓헤

한때 인도 구자라트(Gujarat)주의 카치치(Kachchh) 지역과 오늘날 파키스탄 영토로 분리된 신드(Sindh)주 사이에서는 목판 인쇄 섬유 무역이 성행했다. 그중에서도 카치치의 벨라(Bela) 마을은 그 교류의 중심지였다. 벨라 목판 인쇄는 고풍스럽고 운치 있는 벨라 마을의 이름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목판 인쇄는 인도에서 가장 오래되고 느린 방식의 직물 인쇄 기법 중 하나이며, 목판 인쇄 원단은 여전히 다양하고 효율적인 용도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특히 벨라 목판 인쇄는 거친 천에 진흙을 주원료로 한 날염 방지제를 블록 스탬프로 찍어 문양을 새긴 뒤 백반을 섞은 염료에 담가 여러 차례 세탁과 염색을 번갈아 가며 만들어낸 대담하고도 정밀한 문양으로 유명하다.


벨라 지역 주민들에게 이 공예는 단순히 사용하기 위해 물건을 만드는 일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목판 인쇄는 그들의 기억과 추억을 천 위에 구현해 내고, 삶의 중요한 지표와 정체성을 표현하는 예술이었다. 벨라 마을에서 목판 인쇄를 제작하던 이들은 힌두-카트리(Hindu-Khatri) 공동체다. 이 그룹은 주로 칸비 파텔(Kanbi Patel, 농업 공동체), 자인스(Jains), 로하나(Lohana), 프라자파티(Prajapati), 라즈풋(Rajput) 및 라바리(Rabari) 공동체를 위한 목판 인쇄 공예품을 생산했다. 특히 여성들이 입는 치마인 차니야(chaniya)와 머리 위에 두르는 오다니(odhani) 베일을 주로 만들었다. 의복의 무늬 디자인은 정해져 있었으나 치마를 입는 여성의 연령대에 따라 문양을 달리하여 점차 다양한 문양으로 진화하기에 이르렀다. 초기에는 이 공예업에 종사하는 힌두 카트리 공동체가 적어도 5~60가구는 되었다. 그들은 신드 지역에서 염색에 필요한 재료인 쪽, 기(ghee)버터 기름, 홍미쌀(‘신디’쌀이라고도 함)을 수집하곤 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지역 사회가 비용이 더 저렴한 대량 생산 방식의 제품을 구매하는 방향으로 점차 변하게 되자 장인이 만든 공예품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게 되었고, 벨라 마을의 공예는 쇠퇴의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벨라 마을의 공예처럼 노동과 시간 집약적인 기술은 이제 더 이상 설 곳을 잃게 된 것이다. 더욱이 오늘날에는 목판 인쇄 기술을 전수받고자 하는 젊은이들도 전무하여 공예 기술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대부분의 젊은 세대들은 이러한 전통적 직업이 수익성이 좋거나 생계유지가 가능한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 카치 벨라 공동체에서 목판 인쇄 기술을 연행하는 장인은 단 한 명, 만수프 피탐바르 카트리(Manuskh Pitambar Khatri) 씨다. 그런 만수프 씨에게 카치치 지역의 비정부기구인 ‘카미르(Khamir)’가 손을 내밀었다. 카미르는 이 전통 공예 종목을 재활성화하기 위한 시도로 ‘만수흐 형제’(그의 애칭이다)에게 작업을 제안해 왔다. 필자는 2022년에 가티트(Ghatit) 교수와 디페쉬(Dipesh) 교수의 지도하에 다른 공예 종목을 소재로 카미르와 함께 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만수흐 형제에게 직접 목판 인쇄 기술에 대해 배우고 그와 함께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그와 차를 마시며 나누던 대화가 기억이 난다. 그는 "벨라 지역의 젊은 세대가 우리 공예의 유구한 역사와 기술에 대한 감사함 없이 커간다는 것은 매우 절망적인 일입니다. 특히 이런 기술은 세대 간 전승이 이루어져야만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전통 공예 기술은 우리의 기원을 잇는 역할을 하고, 우리가 다 함께 공유하는 공동체적 유산의 필수적인 측면을 구성합니다. 예전에는 일이 정말 많고 잘됐어요. 그러나 인도-파키스탄 국경 분쟁이 증가한 후, 무역로가 하나둘씩 봉쇄되고 장인들은 그들의 공예를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이제는 국경 인근에 접근하는 것만 해도 특별 허가가 필요한 실정입니다.” 그의 공예 인생은 열한살부터 기본적인 염색, 세탁, 인쇄 기법을 배우면서 시작됐다. 그는 제법 어린 나이에 부친을 여의었다. 그는 이어, "그래서 어린 시절 제 하루 일과는 형님이 평범한 천 조각을 예술 작품으로 만드는 모습을 곁 앉아 조용히 지켜보는 일이었죠.” 라고 회상했다. 현재 60대의 나이를 바라보는 만수흐 형제. 그는 모든 목판 인쇄 작업을 전적으로 혼자 해내고 있다. 벨라 목판 인쇄 기술을 보존하기 위한 고독한 노력을 이어 나가고 있지만, 그는 끝내 자신의 기술이 전승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한때 벨라 마을에서 가족생활의 중심이 되었던 목판 인쇄는 벨라의 유구한 역사와 미래 세대를 잇는 끈이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만수흐 형제의 헌신은 이 무형문화유산이 다시금 존중과 인정을 받아 생명력을 이어 나갈 수 있는 희망이 될 것이다.




카치치 벨라 목판 인쇄의 마지막 장인 사진1
카치치 벨라 목판 인쇄의 마지막 장인 사진2
카치치 벨라 목판 인쇄의 마지막 장인 사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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