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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민중 예술가 톡토굴 사틸가노프

톡토굴 사틸가노프(Toktogul Satylganov)는 위대한 작곡가이자 시인, 아킨(akyn, 즉흥 음송시인), 코무즈 연주가로, 키르기스스탄 문화에 큰 기여를 한 인물이다. 그는 서민들의 고충에 관해 노래했고, 키르기스스탄이 제정러시아의 식민지배를 받던 시절 민족의 자유와 독립에 관한 노래들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키르기스 소비에트 문학의 창시자 중 한 명이다.

톡토굴 사틸가노프는 1864년 잘랄아바트주 톡토굴시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읽기와 쓰기를 배운 적은 없지만, 13세의 나이에 코무즈(키르기스 전통 악기) 연주법을 스스로 익혔고 서민들의 가난과 봉건제도의 잔인함에 관한 노래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1898년 그는 안디잔(Andijan) 봉기에 가담했다는 누명으로 투옥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이후 제정러시아 황제의 선처로 시베리아에서 7년간 복역하는 것으로 감형받았다. 시베리아 노동수용소에서의 경험은 사회적 불평등과 봉건제도의 비인간성에 대한 그의 생각을 보다 굳건하게 만들었다. 이런 연유로 그는 아킨으로서는 최초로 1917년 일어난 볼셰비키 혁명(니콜라스2세 황제에 대항하여 블라디미르 레닌의 지도하에 농민과 노동자가 일으킨 혁명)에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그의 저명한 작품들은 키르기스 문학에 큰 기여를 했다. 또한 소비에트 시절 그의 노래는 키르기스 전통 사회의 여론을 조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노래에는 서민의 삶과 조국의 아름다움, 그리고 소비에트시대의 공산주의 정당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다. 그는 ‘어떠한 여인이 레닌과 같은 아들을 낳았는가?’라는 노래를 통해 최초로 레닌을 묘사하기도 했으며, 이는 키르기스 소비에트 문학의 시초로 여겨지고 있다. 그는 노래를 통해 전제정치의 종말을 예고하며 노동권을 찬양했고,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극이 됐다. 수많은 키르기스 시인과 작곡가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고, 그의 작품은 여러 언어로 번역됐다.

톡토굴 사틸가노프는 아킨으로서 키르기스 전통 예술에 중요한 인물이다. 아킨은 키르기스 유목민의 주된 문화적 표현양식으로, 200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됐다.

키르기스 문학에 지대한 공을 세운 그를 기리기 위한 시와 음악, 책, 기사, 영화가 많이 만들어졌다. 수도 비슈케크 중심에 위치한 국립필하모닉 홀의 명칭에는 그의 이름이 사용됐고, 그를 위한 여러 기념물이 세워졌다. 톡토굴 시도 그를 기념하기 위해 명명됐다. 이밖에도 여러 거리와 지역, 공원, 학교, 도서관, 심지어 최대 규모의 수력발전소와 저수지에서도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다. 톡토굴 사틸가노프는 위대한 작곡가이자 시인, 아킨, 코무즈 연주자로서 키르기스 전통 예술문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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