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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배고픈 혼령들을 달래는 신비한 위령제, 싱가포르 헝그리 고스트 페스티벌

  • 작성자박상묵
  • 작성일2018.09.07
  • 분류무형유산 소식
헝그리 고스트를 위한 기도 테이블의 모습 CCBYSA3.0 메자누라흐만 (위키미디어)
헝그리 고스트를 위한 기도 테이블의 모습 CCBYSA3.0 메자누라흐만 (위키미디어)

중국과 함께 싱가포르, 대만,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의 중국계 민족이 거주하는 여러 나라에서는 매년 음력 7월 한 달간 천국과 지옥의 문이 열리고, 돌아가신 조상을 포함해 모든 혼령과 귀신이 땅으로 내려온다고 믿는다. 흔히 중원절(中元節)로 알려진 이날은 한국에서는 백중(百中), 일본에서는 오봉(お盆)이라고 하며, 서양에는 ‘배고픈 혼령들의 축제’로 잘 알려져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중원절 당일인 음력 7월 보름이 되면 해가 뜰 무렵부터 아파트 앞, 가게 앞, 회사 앞 등 이곳저곳에서 음식을 바치고 향을 피워 제사를 지내며, 종이돈을 태워 공양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때 사람들은 돈봉투를 불에 태우며 ‘잘 쓰시라’라는 말을 읊조리고 그 주변으로 원을 그리며 도는데 그 원 안으로는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다. 심지어 종이로 만든 모형집, 차, 스마트폰까지 태우기도 하는데, 값비싼 물건까지 바치며 이날을 기리는 이유를 오랜 불교설화인 무리엔[1] 이야기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석가모니의 제자 무리엔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불가에 귀의했다. 어머니를 무척 그리워했던 그는 어느 날 신통력을 이용해 어머니를 살펴보았는데, 생전에 죄를 많이 지은 어머니가 안타깝게도 지옥에서 끝없는 배고픔에 고통받고 있었다. 어머니께 음식을 드리려 했지만 입에 닿자마자 재로 변해버려 어머니는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고, 이에 마음이 아팠던 무리엔은 석가모니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에 석가모니가 알려준 대로 음식을 갖추어 공양을 올리자 비로소 그의 어머니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이야기에서 조상의 혼령에게 다양한 음식을 갖추어 바치는 불교의식[2]이 비롯되었고, 이후 도교의 전통과 결합해 자신의 직계조상을 비롯한 모든 혼령을 위로하고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제사를 지내는 중원절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싱가포르는 전통적인 의식만을 치르는 대부분의 국가들과 달리 다소 현대화된 방식을 가미해 중원절을 기린다. ‘노래를 부르는 무대’라는 의미의 게타이[3] 공연이 도시 외곽의 공터나 주차장 곳곳에서 벌어지는데, 경극, 인형극이 위주였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에는 노래뿐만 아니라 춤, 스탠드업 코미디까지 다양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무대는 보통 만담과 코미디로 시작해 분위기를 띄우고 재미를 더하기 위해 싱가포르에서 쓰이는 언어를 모두 동원해 만다린, 중국 복건성 남부 방언인 호끼엔, 영어, 말레이어, 인도어까지 버무린다. 모든 게타이 공연은 항상 맨 앞줄 자리를 비워놓는데 혼령들이 앉아 편하게 구경하라는 배려의 의미를 갖는다. 이처럼 게타이 공연이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현대적인 형식을 갖추었다고는 해도 모든 춤과 노래는 혼령들을 위로하고 혼령들을 보살피는 염라대왕을 기쁘게 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중원절 기간에는 후손을 찾아오는 조상과 함께 나쁜 의도를 품은 수많은 악령도 지상으로 내려온다고 믿는다. 따라서 무고한 사람들이 약령에게 해를 입지 않도록 여러 가지 행동을 규제하는 금기사항들이 있다. 우선 물에 빠져 죽은 혼령이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기 때문에 물가에 가거나 수영하는 것은 삼가야 하고, 길을 헤매는 혼령을 마주치지 않도록 밤에 밖을 돌아다니지 말고 일찍 귀가해야 한다. 또 여행과 결혼, 이사 등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악령의 저주를 받을 수 있으므로 되도록 삼가야 하는 등 사람들은 평소보다 더욱 절제되고, 경건한 생활을 한다.

한편 싱가포르 당국은 이러한 중원절이 미래 세대에 지속될 수 있도록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다양한 노력을 쏟고 있다. 또한 대기오염 및 환경과 관련한 노력들도 기울이고 있다. 2016년 난양기술대학교는 중원절이 열리는 기간 동안 대기샘플을 채취해 검사한 결과 초미세먼지(PM 2.5) 수치가 약 60%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또 종이돈과 향에 포함된 납, 주석 등 9대 대기오염물질 농도가 18%에서 50%까지 증가했다고 보고하면서 심각한 호흡기 및 심혈관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오염원에 가까이 거주하는 주민들의 경우 그 발병률이 더욱 높을 것이라고 예측하며 사람들에게 더욱 경각심을 촉구하기도 했다. 싱가포르 환경부 당국은 현재 기존 드럼통에서 연소 시 발생하는 연기의 50%, 타고 남은 재의 3% 수준에 불과한 스테인레스 연소통을 시 의회를 통해 보급하고 있으며, 나아가 폐쇄된 연소통을 사용하거나 친환경적인 물질로 만든 공물을 태워 대기, 수질오염을 완화하고 건강문제를 방지할 수 있도록 갖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이에 싱가포르 도교재단과 불교재단은 중원절을 기리는데 있어 ‘무엇을 얼만큼 태웠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진심을 다했는지가 중요하다’라고 전하며 사람들의 책임감 있는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다양한 민족 간 상생과 조화를 기반으로 성장한 싱가포르인 만큼, 축제를 향유하는데 있어서도 특정 집단 내에서 배타적인 방식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소속 국가 및 집단 내의 다른 구성원들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할 것을 촉구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위와 같은 사회 각계각층의 노력이 있었기에 싱가포르의 중원절은 비로소 다양한 민족이 함께 어울리는 축제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오늘날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지구화 흐름 속에서 국가 간, 민족 간 갈등이 빈번히 발생하는 가운데 싱가포르의 중원절을 통해 어떻게 상호 간의 존중과 이해를 통해 각종 사회적 문제와 갈등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할 수 있는지 배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1] 무리엔(目連, Mu Lian ):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중 한 명으로 산스크리트어로 마우드갈리아야나(Maudgalyayana)라고 부른다.

[2] 우란분회(盂蘭盆會, Ullambana Ceremony) : 죽은 사람이 사후에 거꾸로 매달리는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구하기 위해, 후손들이 음식을 마련하여 승려들에게 공양하는 것

[3] 게타이(歌台, Getai, Song Stage) :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중원절 기간 동안 혼령을 달래기 위해 열리는 야외 무대 공연의 종류(https://en.wikipedia.org/wiki/Get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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